장애인 복지정책은 국가의 가치관, 제도적 전통,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북미와 유럽은 모두 복지 선진국으로 꼽히지만, 장애인 정책의 방향성과 운영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북미권은 자율성과 민간 중심 접근을, 독일과 북유럽 국가가 대표하는 유럽권은 법적 권리 보장과 공공 중심 운영을 강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북미와 유럽의 장애인 정책을 비교하며, 그 차이점과 시사점을 짚어봅니다.
1. 법적 접근: 권리 선언 중심(북미) vs 권리 실현 구조(유럽)
북미 지역, 특히 미국은 ‘미국장애인법(ADA, 1990)’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를 명문화한 대표적 국가입니다. 이 법은 민간과 공공 분야 전반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접근성, 고용, 교육에서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복지 서비스 제공은 각 주의 판단에 맡겨져 있어, 법적 권리와 실제 서비스 간 괴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럽의 대표적 사례인 독일은 ‘참여법(BTHG)’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국가 의무로 명시하고, 구체적인 예산, 조직, 실행계획까지 함께 설정합니다. 스웨덴도 ‘LSS법’을 통해 중증 장애인을 위한 10가지 맞춤형 서비스를 지방정부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북미는 법으로 권리를 선언하고, 유럽은 그 권리를 실현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2. 제도 운영: 민간 자율성(북미) vs 공공 책임성(유럽)
북미권의 장애인 복지 운영은 민간 부문과 개인의 자율성에 상당 부분 의존합니다. 미국은 주별로 복지 예산과 프로그램이 다르며, 많은 복지 서비스가 민간 기관 또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제공됩니다. 특히 ‘Self-Directed Service’ 제도를 통해 장애인이 자신이 받을 서비스를 직접 선택하고 계약할 수 있는 구조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미국 복지의 핵심 특징입니다. 반면 유럽은 공공 책임이 중심입니다. 독일은 복지서비스 제공의 책임 주체가 지방정부이며, 서비스 질을 국가 차원에서 평가합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은 보편주의 복지를 바탕으로 공공 부문이 모든 시민에게 균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데 유리한 구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북미는 ‘선택과 다양성’에 강점을, 유럽은 ‘형평성과 책임성’에 초점을 둡니다.
3. 정책 철학: 개인 중심 모델(북미) vs 사회 연대 모델(유럽)
북미와 유럽은 정책을 바라보는 철학에서도 차이가 분명합니다. 북미는 복지를 개인의 권리로 보되, 그 실행을 개인의 책임과 선택에 맡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개인예산제(Personalized Budget)’를 통해 장애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설계하고 계약하는 구조를 운영합니다. 이는 주체성을 높일 수 있지만, 정보 접근성이 낮거나 자기결정 역량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제도 활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럽은 복지를 사회 전체의 연대책임으로 보고, 국가와 공동체가 적극 개입합니다. 스웨덴은 지역사회 기반 돌봄을 강화하고, 독일은 참여위원회와 이용자 평가제 등을 통해 시민 참여와 사회적 통제를 제도화했습니다. 유럽의 철학은 복지를 단지 ‘선택지’가 아니라 ‘구조적 지원’으로 바라보며, 배제 없는 시스템 설계를 우선합니다.
결론
북미와 유럽의 장애인 복지정책은 각각의 강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미는 개인화된 서비스와 자율성이 강점인 반면, 정책 일관성과 접근성 면에서는 개선이 필요합니다. 유럽은 형평성과 사회책임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복지구조를 갖추었지만, 유연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다소 경직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국의 사회·문화적 조건에 맞는 제도를 선택하고, 각 모델의 장점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것입니다. 한국 역시 북미와 유럽의 복지철학을 참고하여, 자기결정과 공공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장애인 복지정책을 설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