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자립생활센터(Independent Living Center, ILC)는 장애인이 시설이나 가정에 종속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자립생활센터는 단순한 복지 서비스 제공을 넘어,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로서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세계 각국은 자립생활센터를 제도화하거나 지원 체계에 포함시키며,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권리 보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운영 사례를 비교해보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미국 – 자립생활 운동의 본고장
미국은 자립생활센터 개념을 가장 먼저 제도화한 나라입니다. 1960~70년대 장애인 권리운동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ILC는 장애인을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권리 주체이자 서비스 제공의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미국의 자립생활센터는 Rehabilitation Act(재활법) 제7장에 따라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됩니다. 특히 운영위원회의 다수가 실제 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되어, 당사자 중심 철학을 제도적으로 보장합니다.
센터의 주요 서비스는 ▲동료상담(peer counseling) ▲권익옹호(advocacy) ▲생활기술 훈련(IL skills training) ▲정보제공(information & referral) ▲개별 자립계획 수립(ILP) 등입니다. 예를 들어, 중증지체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주택 개조가 필요하다면, 자립생활센터는 주거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합니다. 또한 취업, 교육, 교통 접근권 문제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권익옹호 활동도 병행합니다.
미국 모델의 강점은 장애인이 단순히 서비스 대상이 아니라, 센터 운영과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센터의 자율성이 크기 때문에 지역 간 서비스 수준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도 지적됩니다.
2. 일본 – 법제화와 지역사회 중심 모델
일본은 1980년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자립생활센터를 도입했으며, 현재는 전국적으로 약 130여 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종합지원법에 근거하여 제도적으로 자리 잡았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됩니다. 일본 모델의 특징은 지역사회 기반 운영입니다. 즉, 센터가 장애인 개개인의 생활권 안에서 활동하며, 당사자의 필요에 맞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서비스 범위는 ▲동료상담 ▲자립생활 훈련 ▲개인 활동보조 연계 ▲주거 지원 ▲취업 지원 등이며, 특히 활동보조인 제도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증장애인이 혼자 외출하거나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을 매칭하고, 생활기술 훈련을 병행합니다. 또한 일본은 자립생활센터를 ‘권익옹호 기관’으로도 운영하여, 지방정부의 복지정책이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모니터링합니다.
일본의 자립생활센터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주도의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인의 자립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재정적 자립도가 낮고, 일부 센터는 정부 보조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3. 유럽 – 사회통합을 위한 포괄적 지원
유럽 국가들은 자립생활센터를 ‘사회통합의 허브’로 기능하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덴마크, 영국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스웨덴은 LSS법(특정 기능장애인을 위한 지원 및 서비스법)에 근거해 자립생활센터를 제도화했으며, 지방정부가 직접 예산을 배분합니다. 이곳에서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제공합니다. 특히 스웨덴은 자립생활센터를 유니버설 디자인 정책과 연계하여, 교통, 교육, 문화생활까지 포함한 통합 지원을 제공합니다.
영국의 경우, ‘Direct Payment(직접지불제)’ 제도를 통해 장애인이 스스로 예산을 관리하며 자립생활센터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강화한 모델입니다. 덴마크 역시 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활동보조, 직업재활, 사회참여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장애인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유럽 모델은 자립생활을 단순한 개인 지원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장애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즉, 자립생활센터는 단순한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장애인 권리 실현을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미국은 당사자 중심의 권익옹호 모델, 일본은 지역사회 기반의 맞춤형 지원 모델, 유럽은 사회통합형 포괄적 지원 모델을 보여줍니다. 한국은 이 세 가지 사례를 종합하여, ▲장애인 당사자 주도의 운영 ▲지역사회 내 실질적 자립 지원 ▲사회적 권리 보장이라는 세 가지 방향을 동시에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